[ 모라동 기점 ]
모라동에 대한 기록으로는 <동래부지(1740년)>에‘모라리는 사천면 상당 관내에 있으며 관문에서 22리 거리에 있다’고 했다.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1904년)> 에 의하면 사상면 관내에 모라동이 있었고 당시 호수는 58호였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부산부 좌이면 덕곡동과 사상면 모라동이 합쳐져서 동래군 사상면 모라동이 되었다.
운수산에서 낙동강 쪽으로 뻗어 나온 지맥 가운데 강 쪽으로 가장 먼 산줄기 끝언덕위에 패총이 있었다. 지금의 모라고개 중간을 끊은 도로 서쪽 주택밀집지역이다. 이 패총에서 김해식토기 파편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는 기원 전후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라동의 이름에 관해서는 옛날 마을 뒷산 기슭에 모란꽃이 많이 피어서 모란마을이라 불렀던 것에 연유한다는 것이다. 다른 유래로는 <양서(梁書)> 신라전에 보면‘그 습속에 성(城)을 건모라(健牟羅)로 부른다’고 한데서 찾고 있다. 건모라는 큰 모르, 큰몰, 큰 마을, 큰말의 음과 비슷하며 대촌(大村) 대읍(大邑)의 뜻이다. 즉모루 모로 모라 등은 읍락인 마을을 뜻한다. 즉 모라는 마을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말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마을 모을 또는 말 몰 또는 마슬 마실 이라하는 동시에 모이는 곳이 있는 촌락 또한 같은 말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마실 마슬은 마을의 변음이다. 이런 모라라는 마을 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는 것은 이 동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모라동에 있던 옛 마을로는 지금의 모라동의 근간이 되는 모라마을과 원래 양산군 좌이면에 속했다가 1914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로 편입된 덕곡마을 외에 동리마을과 사곡마을이 있었다.
운수천 하구 위쪽을 옛날에는 동리라고 불러 지금도 동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동리마을을 속칭 윗(웃)각단(각당)이라고도 부른다. 현재의 경부선 철도 동쪽이다. 철도 서쪽은 아랫(아래)각단이었다. 사곡마을은 백양산 기슭의 운수사로 이어
진 골짜기를 절골(寺谷) 또는 큰골(大谷), 장곡(長谷), 장안곡(長安谷)이라고도 부른다. 사곡에 있는 마을이라 사곡마을이라 부른 것 같다. 한편 사곡마을을 소곡(小谷)마을이라고도 하나 사곡이 소곡으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분명하지 않다.
모라 운수사-애진봉-백양산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20
모라역 → 백양터널 위 들머리 → 운수사 → 애진봉 → 백양산 정상
운수사까지 접근하기가 조금 불편하지만 백양산 정상까지는 애진봉을 거치든 운수사 고개를 넘든 여기보다 더 쉽게 오를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더구나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 등산로가 비교적 한적하다.
도시철도 2호선 모라역 2번 출구로 나와 동쪽의 경부선 철로 아래를 지나 백양로를 건너는 등 백양터널을 향해 뻗어 있는 고가도로 옆 도로를 따라 간다. 터널 톨게이트 왼쪽의 경사로를 따라 가다 터널입구 바로 위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바꾸면 들머리다. 20분 정도의 거리다.
산불감시초소 앞에서 동쪽으로 운수사까지는 900m다. 오른쪽 운수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목재계단 길은 쉬어가며 쉬엄쉬엄 올라가라고 곳곳에 정자와 쉼터가 있다. 4번째 정자를 지나면 곧 도로와 만난다. 숲 사이로 희미하게 절의 윤곽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도로 건너편의 숲길들어서서 오른쪽의 부도 2기를 지나 3~4분이면 절에 닿는다.
애진봉으로 가려면 주차장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새로 지은 큰 법당을 왼편에 두고 오르는 산길이다. 위쪽에는 식수가 없으므로 빈수통이라면 여기서 물을 채워야 한다.
산길에 접어들어 4~5분이면 임도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20m 정도 가면 왼쪽에 산으로 오르는 길이 열려있다. 잡목 사이 길이 조금은 가파르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에 계단이 있어 오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너덜겅을 지나면 곧 애진봉이지만 마지막의 계속되는 돌계단이 얼마나 귀찮았든지 조금 둘러가는 새 길도 나있다. 애진봉에 올라서면 정상은 지척이다. 동북쪽으로 빤히 보이는 정상까지는 10분 거리다.
운수사 고개를 넘어 정상으로 가려면 절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 산으로 난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새로 지은 큰 법당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면 주변은 잡목림이다. 7~8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건너편의 산길로 다시 들어가 너덜겅에 세워진 돌탑군 사이로 얼마 안가면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고개를 넘어 북쪽으로 그대로 가면 말등고개로 이어진다. 백양산 정상에 오르려면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꿔 마주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10분 정도 오르면 주능선 길과 만난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정상에는 7~8분이면 올라선다.
운수사(雲水寺) 창건에 관해서는 삼국시대 이전 가야 때 세웠다는 설과 원효대사가 선암사를 창건하고 산을 넘어서 이곳에 운수사를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가 확실하지 않다.
오래된 절이기는 하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건하였고 옛날의 대웅전 위쪽에 1993년 대웅보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동래부지(1740년)> 불우(佛宇)조에‘운수사의 처음 이름은 신수암(新水庵)이다’라는 기록을 보면 처음에는 신수암이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운수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있는 양수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는 것을 보고 운수사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절에는 원래 있던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대웅전과 삼성각, 용왕각, 요사 3채가 경내에 있고 그 위쪽에 새로 터를 닦아 대웅보전을 세웠다.
[ 구포 기점 ]
구포의 옛 지명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구포는 거뵈개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거뵈개는 낙동강물 이름인 갑우내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포를 굿개로도 보는데 이는 고대의 제사인 굿을 하는 나루라는 뜻이다. 굿은 원시신앙 또는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에서 중심세력이 있었던 지역의 행사 중 하나였다. 따라서 구포는 굿개이니 옛날 제사가 행해지던 장소의 하나로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양산군지>의 구포에 관한 기록은 감동진 일명구포(甘同津 一名龜浦)라고 하여 구포를 감동나루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감동(甘同)이란 신의 뜻이므로 구포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한편 거북과 관련시키려는 것도 보인다. <양산군지>의‘설창고일남창 범방산일맥낙수 두재석장여구(設倉故日南倉 泛方山一脈洛水 頭載石狀如龜 : 창을 설치하였으므로 남창이라고 하며 범방산의 한 줄기가 낙동강물을 향하여 머리에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 거북과 같다)’고 하고‘창남진유혈 동출온기 토인위지구식진(倉南津有穴 冬出溫氣 土人謂之龜息津 : 창의 남쪽에 있는 나루터에 구멍이 있는데 겨울에도 온기가 있어 그곳 사람들이 이를 구식진이라고 말한다)’이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계속되는 인구증가로 1979년 1, 2동이, 1994년 3동이 분동된 구포동에는 리(里)나동(洞)의 중심이었던 구포마을과 구남, 구명, 대리 등 자연마을이 있었다.
구남마을은 구포2동 924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로 구포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것같다. 지금의 대성아파트 부근으로 구남초등학교와 도시철도 2호선 구남역 등이 지명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구명마을은 구포2동 774-1009, 1030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로 지금의 구포초등학교 뒤쪽이다. 구명은 구포초등학교의 전신인 구포사립구명학교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리마을은 구포1동 702-705번지 일대로 지금의 구포 새마을중학교 부근이다. 대리천(大里川)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대리마을이 라 한 것 같다.
대리마을이 있던 골짜기가 음정골로 이는 곧 신곡(神谷)을 의미한다. 거북 구(龜)자에는 곰 검 즉 신(神)의 뜻이 있다. 따라서 구포는 신골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고도 한다. 대리는 큰 마을이란 뜻으로 마을의 할배당산은 동제를 지내는 곳으로 수령 400년의 팽나무와 소나무, 당집이 있다. 구포의 마을들은 대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낙동강변으로 나아갔다고 보아진다.
구남역-대문바위-범방산-운수사 고개-백양산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50분
구남역 → 효림유치원 → 체육공원 → 대문바위 → 범방산 정상 → 시계가 있는 쉼터 → 송전철탑 갈림길 → 첫봉우리 → 운수사고개 → 정상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오르는 이 코스는 가을이나 겨울산행에 더 알맞다. 도시철도 2호선 구남역 4번 출구로 나와 덕천로터리 쪽으로 100m정도 가다 효림유치원 가는 길 표시대로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도로 따라 2~3분이면 옹벽과 마주치면 왼편으로 돌아 40m 정도 가서 그린하이츠빌라 옆 도로를 따라 들어가 만나는 효림유치원·어린이집 옆이 들머리다.
‘무장애 숲길’인 목재 데크의 산책길이 정상까지 이어져 걷기는 편하나 지루함을 피하려면 길을 벗어나 옛 등산로를 더듬어 오를 수밖에 없다. 2010년 6월 착공하여 2013년 12월에 완공된 이 숲길 아래쪽은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서쪽에, 정상부는 동쪽을 지그재그로 오르게 되어있다. 옛길을 더듬어 능선으로 오르려면 계단으로 오르다가 도중에 적당히 벗어나면 된다. 데크길을 따라가면 동네 체육시설이 나타난다. 더 올라가면 식수가 없으므로 여기서 물을 준비해야 한다. 데크를 벗어나 3~4 분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주변에는 바위들이 듬성듬성 서 있어 소나무와의 어우러짐이 아름답다. 얼마안가 마치 대문처럼 서 있는 여러 개의 바위 사이를 지나면서 낙동강과 북구 일대의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10여분 걷다보면 전망대가 있는 범방산 정수리에 올라서고, 정상에서 내려가다 보면 이정표가 서있다.
들머리(효림유치원 옆)
바로 가면 모라, 오른쪽은 구포도서관으로 잇는다. 백양산으로 가려면 왼쪽의 운수사 백양터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평탄한 산길을 지나 돌계단으로 오르면 시계가 있는 쉼터이다.
2~3분 내려가면 왼쪽의 운수사로 가는 도로와 만나나 산길로 그대로 오른다.
묘지를 만나면 오른쪽의 완만한 등산로로 오른다. 7~8분이면 헬리포트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운수사로 가는 도로와 다시 만난다. 도로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5~6분가면 오른쪽으로 운수사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대로 2분쯤 오르면 길이 왼쪽으로 꺾인다. 송전철탑을 보면서 1~2분이면 언덕에 올라서서 5~6m 더 가면 오른쪽에 희미한 등산로가 있다.
묘지를 지나면서 급경사로 변한다.
주변은 지금까지의 송림지대와는 달리 잡목지대가 이어졌다 끊겼다 하면서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듯 등산로는 억새풀과 산딸기 넝쿨로 뒤덮여 있다. 그렇다고 여름이라도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우거져 있지는 않다. 20분이면 억새풀지대를 지나 첫 봉우리에 올라서고 이어 5분이면 왼쪽의 운수사로 빠지는 길과 연결된 고개에 내려선다.
마주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오르다보면 봉우리 직행의 희미한 길과 오른쪽의 우회로로 갈린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10여분 만에 주능에 올라서게 된다. 북쪽의 불태령에서부터 이어져 온 방화선으로 되어 있는 주능에 서서 동남쪽을 보면 조그마한 봉우리 너머로 정상이 보인다. 쉬엄쉬엄 가도 7~8분 이면 정상에 설 수 있다.
숙등역-주지봉 능선-백양산 정상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40분
숙등역 → 덕천교차로 → 주공101동 뒤 계단 → 쉼터 → 능선 → 철탑 → 불태령 → 백양산 정상
금정산의 산줄기가 만덕고개와 불태고개를 넘어 불태령을 지나 백양산으로 방향을 틀기 전 구포 쪽으로 갈라지면서 우뚝 솟은 산봉우리 세 개가 있다. 그 모습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주지봉 또는 낙타봉, 삼형제바위로 부른다. 이 봉우리는 만덕과 덕천 구포의 시랑골과 음정골 등 산 아래 마을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구포지역의 주산으로 여겨졌다.
주지봉(614m)을 덕천 쪽에서 오르려면 도시철도 3호선 숙등역 5번 출구로 나와 바로(서쪽) 2분 쯤 가다 덕천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돈다. 도로 따라 신호대까지 가서 다시 좌로 돌아 60m 정도면 길 건너편에 주공1, 2단지 입구가 있다. 도로를 건너 입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 101동 옆에서 뒤로 들어가면 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바로 위의 산으로 들어서면 산불 감시초소에서부터 소나무 숲속의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5분 오르면 왼편에 의자 있는 휴게소가 나오고, 다시 5분 오르면 체육시설이 있는 휴게소다. 계속되는 된오름을 10분 정도 걸어 묘지를 지나면 네거리 쉼터가 나온다. 어린이 대공원 만남의 광장에서 주지봉 허리를 돌아 운수사까지 5.4km의 등산로 중간 지점이다.
■불태령 케른. ▲들머리(주공1단지 101동 앞).
여기서 계속되는 급경사를 조금 오르다 보면 소나무는 사라지고 주변은 진달래 등 잡목이 우거진 길로 15분이면 능선에 올라선다. 북쪽으로 만덕동과 덕천동 시가지 너머 금정산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잡목 사이의 능선 길을 따라 3~4분이면 해발564m 영탑(永塔)이라는 조그마한 돌탑이 있는 공터에 서게 된다.
앞에는 커다란 봉우리 여러 개가 기다리고 있다. 2~3분 만에 첫 봉우리를 넘으면 암봉 2개가 버티고 서 있다. 보기에는 험것 같지만 올라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해 크게 위험한 곳은 없다.
바윗길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두 바위봉 오른쪽으로 따로 길이 나있다.
또 최근 바윗길을 피해 아래쪽으로 둘러가 는 좁은 새 길이 나 있어 이를 따라 가는 것도 좋다. 어느 쪽으로 가든 바위봉 두 개를 넘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바위봉을 지나면 앞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또 하나의 봉우리가 막아서면서 등산로는 좌우로 갈라진다. 왼쪽은 봉우리를 넘고 우측은 허리를 돈다. 봉우리를 넘으면 조금 넓은 공지가 나오고 바로 앞에 고압송전철탑이 서 있다. 철탑에서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돌탑이 있는 불태령까지는 7분이면 된다. 남쪽으로 뻗은 방화선을 따라 건너다보이는 백양산 정상까지는 25분 정도의 거리다.
덕천역-말등 능선-주지봉-운수사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2시간 10분
덕천역 → 태호빌라 → 말등고개 → 영탑 → 철탑 → 운수사 갈림길 → 운수사고개 → 운수사
백양산 불태령에서 갈라져 나온 주지봉 능선 중간에 또 하나의 작은 능선이 서쪽으로 뻗으면서 구포와 덕천을 가른다. 구포 음정골(시랑골)과 덕천 사이의 이산등성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말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말등고개 또는 질매재라고도 부른다. 한편 음정골 참새미(참샘)가 있는 언덕 위에서 옛날 제주도에서 옮겨온 말을 조련시켰다고 하여 말등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도시철도 3호선 덕천역 9번 출구로 나와 바로 20m쯤 가다 오른(남)쪽으로 돌아4분정도 가면 앞에 도로 옹벽이 막아선다. 좌우 어디로 가나 길이 비슷하나 오른(서)쪽으로 50m 정도 가서 건널목 건너 왼(동)쪽으로 돈다. 다시 40m 가서 오른(남)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다 청유탕 지나 네거리에서서 가파른 남서쪽 오르막을 쳐다보면 멀리 삼경장미아파트가 보인다. 이 아파트 못 미쳐서 왼쪽으로 태호빌라 입구에 서게 된다.
왼쪽의 산으로 오르는 쇠난간이 있는 계단이 들머리다. 계단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서 소나무 숲 사이의 길은 경사가 심해진다. 3~4분을 걸어 소나무 숲에서 벗어나면서 직등이던 길은 오른쪽으로 약간 돌아 오른다. 2~3분이 면 길은 아카시아나무와 산딸기나무 사이로 직등하게 된다.
다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완만한 경사가 얼마간 계속되다가 묘지 4기 옆을 지나 얼마 안 되어 다시 묘지 1기를 만나면 올라갈 곳이 없다. 말하자면 말 엉덩이에 올라선 셈이다. 평지에서 완만한 내리막에 이어 급경사를 내려가 평지인 가 싶으면 곧 말등고개인 내리막 끝에 서게 된다.
40m 정도 앞의 휴게소에서 어린이 대공원 만남의 광장과 남쪽 운수사는 각각 2.7km이며, 불태령은 1.5km, 들머리까지 1.2km인 여러 갈래의 길이 만난다.
쉼터에서 소나무 사이의 가파른 비알을 10여분 오르면 망바위 쉼터다. 이후는 잡목지대로 10분 정도 올라 넓은 쉼터를 지나 7~8분 더 올라야 말등능선이 시작되는 해발 564m의 영탑(永塔)에 이른다.
두 개의 암봉을 넘어 세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 고압송전철탑이 서있다. 철탑에서 40m정도 가면 오른쪽에 갈림길이 나온다.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로 2~3분이면 주지봉 남쪽 등산로에 올라선다. 남쪽으로 2~3분이면 서쪽의 산철쭉 사이로 운주사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급경사로 조금 내려가면 새 길이 있지만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다. 10분 정도면 샘터를 지나면서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5분가면 말등고개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계속 남쪽으로 6~7분 걸어 운수사고개를 넘으면 바로 아래 너덜겅의 돌탑군 사이를 지나 임도를 거쳐 운수사에 닿는다.
* 저작권은 부산산악포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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