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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 어디까지 알고 있니? - 물회의 모든 것, 포항물회, 제주물회, 속초물회, 통영물회, 남해안물회

by Jigton GAL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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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해, 여름. 머리 위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한낮. 지인들과 해안 길을 따라 동해를 걷던 중, 작은 포구마을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포구에는 늘그막의 어부 몇이 그물 작업을 하다가, 일손을 놓고 참을 챙겨 먹고 있었다. 가만 보니 이런저런 생선들을 물 칸에서 꺼내 쓱쓱 썰고는 상추, 무 등을 삐져 넣더니 고추장과 물을 넣고 비빈다. 곧이어 양푼이 벌겋게 물이 든다. 이 생선회와 채소를 입이 미어지라 큰 숟가락으로 한 입 크게 먹는 것이다. 그 먹는 모습이 너무 시원하고 먹음직스러워 한참을 그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러운 듯 쳐다보는 나그네들에게 어부는 휘휘 손짓하며 “한 숟갈 할란교?”라며 양푼에 든 음식을 권한다. 일행 중 하나가 얼른 근처의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사서 자리의 구색을 갖춘다. 여름 한낮 동해 포구에서, 시원한 물회를 중앙에 놓고 거나한 술자리가 펼쳐졌던 것이다.

 

   ‘물회’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해산물을 생으로 잘게 썰어서, 파,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으로 버무린 뒤, 물을 부어서 먹는 음식’이다. 보통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에 발달한 음식으로, 제주를 비롯한 남해 일원과 포항이나 부산, 속초 같은 남동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물회는 해안가 어부들이 뱃일하다 출출할 때 한 그릇씩 먹던 ‘노동 음식’이 그 시작이었다. 갯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해산물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찬물에 된장이나 고추장 풀어 대접째 훌훌 들이마시듯 먹음으로써 ‘끼니를 잠시 속이던 음식’이었던 것. 오죽하면 ‘물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듯 해안가 마을 사람이나 뱃일하는 어부들에게는 밥 먹듯이 참 먹듯이 먹던 음식이 물회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해안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상한 음식 가운데 그 대표적인 것이 ‘물회’이다. 그중에서도 포항이나 속초 같은 동해안과 부산, 제주의 남해안 등 대표적인 어항 지역에서 물회는 특히 잘 발달하여 있다.

 

   이 ‘물회’는 각 지역의 바다 생태와 환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표 음식’으로도 인식되는데, 지역의 바다 환경에 적응한 다종다양한 해산물을 주된 음식 재료로 활용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자주 활용되는 해산물을 재료로 조리법이 형성된다. 

 

   양념도 각 지역의 선호도에 따라 달리 쓰이는데, 동해안은 고추장을 새콤달콤하게 만든 양념 물을 쓰고, 제주와 남해안은 주로 된장을 물에 풀어서 쓴다. 그 외, 지역에 따라 양념을 물에 풀어 말아 먹는 방식, 채소에서 나오는 채소즙으로 비벼 먹는 방식이 있고, 요즘은 살얼음을 얹어 여름 별식으로 먹는 방식도 선호한다. 특히 동해는 고추장으로 양념해서 맵고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고, 제주나 남해안은 된장을 풀어 담담하고 고소한 맛을 즐겨한다. 

 

   이 때문에 지방마다 ‘물회’의 조리법과 재료가 다양하다. 각기 그 지방색을 띤 독특한 ‘물회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분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해안의 ‘가자미 물회’, ‘오징어물회’, ‘해산물 모둠물회’, ‘꽁치물회’, 남해안의 ‘참돔 물회’, ‘멍게 해삼 물회’, ‘전복물회’, ‘멸치 물회’, 서해안의 ‘굴 물회’, 제주도의 ‘자리물회’, ‘소라 물회’, ‘한치물회’, 부산의 ‘눈볼대 물회’, ‘붕장어 물회’…

 

 

 동해안 오징어 물회(좌),   동해안 모듬해물물회(중앙), 동해안 꽁치물회(우)     최원준 

 

 

 

 남해안 전복해삼 물회(좌),  부산 눈볼대 물회(중앙), 부산 붕장어 물회(우)      ⓒ최원준 

  

 

 

 

   지역마다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회를 즐기는데, 속초는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베이스에 살얼음 육수와 동해에서 나는 여러 해산물을 푸짐하게 얹어 먹는 물회가 유명하고, 제주는 제주 앞바다에서 흔히 나는 자리돔이나 소라 등을 썰어 냉수에 된장을 풀어 훌훌 들이켜듯이 먹는다. 

 

 

 

 

 속초 해물물회(좌)/  제주도 물회의 차이(우)                ⓒ최원준, 지역문화연합원  

 

  

 

 

   포항은 꽁치나 청어 등, 등 푸른 생선과 오징어 등을 고추장에 설탕을 넣고 채소에 비벼서 먹는다. 부산은 동해권과 남해권, 제주권의 중간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물회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처럼 지방마다 즐겨 먹는 물회는 제각각이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물회를 일별한다면, 우선 물회의 고장 포항의 ‘포항 물회’를 살펴봐야 하겠다. 포항은 동해의 풍부한 어족이 집산하는 곳이기에 연중 다양한 재료가 넘쳐난다. 그러하기에 포항 사람은 일년내내 물회를 즐길 정도로 포항 음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향토 음식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물회 앞에 지리적 표장처럼 ‘포항 물회’라는 보통명사가 생겼을까. 

 

   포항 물회는 물회 안에 ‘물’이 없다. 물회인데 육수나 물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선회와 오이, 배, 양배추 등속에 고추장만으로 비벼서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생선회와 채소 고추장이 잘 섞이게끔 비벼서 먹다가 채소 등에서 물이 자작하게 나오면 그 물에 밥을 비벼 먹거나 시원한 물을 따로 넣어 국수나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그래서 ‘포항 물회는 비벼서 먹는다.’라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물회로 ‘가자미 물회’, ‘오징어 물회’, ‘등푸른생선 물회’ 등이 있는데, 특히 등 푸른 생선을 물회 재료로 쓰는 것이 특징이다. 비린내가 날 것 같지만 집집이 담그는 물회용 고추장으로 그 비린 맛을 없앤다. 주로 꽁치, 청어 등을 활용한다. 가자미는 ‘돈지’라는 참가자미와 ‘미주구리’라 불리는 기름가자미, 그리고 도다리 등을 쓴다. 등 푸른 생선 물회는 고소하고 짙은 맛이 일품이고, 가자미 물회는 담백하면서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포항 등 푸른 생선 물회                                                                                               ⓒ최원준

 

 

 

   제주도의 여름에는 제주도민들의 사랑을 받는 여름철 대표 물회가 있다. ‘자리물회’가 바로 그것. 여름철이면 제주 앞바다를 온통 뒤덮듯 떼를 지어 다니는 손바닥 크기의 자리돔으로 만든다. 요리 방법은 고기를 뼈째 얇게 썰어 파 고추 마늘 통깨와 함께 넣고, 손으로 죽죽 찢은 상추나 깻잎 등을 더해 된장이나 고추장에 버무리면 끝이다. 

 

   무더운 여름날 자리물회에 찬물 한 그릇을 부어 사발째 훌훌 들이켜듯 마시면 잘갈잘강한 자리돔 식감과 함께 물회 국물이 목으로 타고 넘어가는 그 시원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외 ‘구쟁기 물회’도 좋다. 소라를 제주에서는 ‘구쟁기’라고 하는데, 소라살을 얇게 저미듯 썰어서 각종 채소와 고추장에 버무려 넣고 시원한 물에 부어 함께 먹는다. 꼬독꼬독한 식감이 일품이다.

 

   전남 장흥에도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물회가 있는데, ‘된장 물회’가 그것이다. 근해에서 그날그날 잡은 생선 중 작고 값싼 물고기를 회 떠, 새콤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와 된장을 푼 물에, 식은 밥 한 덩이 함께 말아 후룩후룩 마시듯 먹는 음식이다. 

   그 유래는 며칠씩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준비해 간 김치가 너무 시어 버리자 잡아놓은 생선 숭덩숭덩 썰고 된장과 함께 섞어 물회를 만들어 먹은 데에서 시작한다. 주로 농어 새끼, 돔 새끼, 쑤기미 등 어리거나 경제성이 없는 생선을 가리지 않고 재료로 썼다. 

   ‘된장 물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된장을 주된 양념 베이스로 활용한다. 그래서 장흥군 회진 일대에서는 ‘된장 물’이라 불리며, 일상의 반찬으로도 늘 해 먹는 음식이었다. 잘 익은 열무김치를 국물로 쓰기 때문에 국물이 새콤달콤하고 시원해서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더더욱 빛나는 음식이다. 

 

   물회의 고장 중에는 속초를 빼놓을 수가 없다. 가장 화려한 물회를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철 생선회에 오징어, 전복과 해삼, 멍게, 성게알 등 각종 해산물을 양껏 올리고 각종 과일, 매실 등의 추출물과 한약재 달인 물로 만든 양념을 살얼음 육수로 낸다. 원래는 광어와 우럭, 도다리 등 흰살생선에 채소 등과 고추장 육수를 내는 평범한 물회였는데, 서울 등지의 관광객들 입맛에 맞춘 물회가 자리 잡게 되면서 지금의 속초 물회의 특징이 된 것이다. 

 

 

 

 

  

 

 

 

    속초 물회                                                                                                                ⓒ최원준

 

 

 

   그 외 ‘통영 물회’는 도미 등 고급 생선을 쓰기도 하고 제철마다 멍게를 사용한 ‘멍게 물회’, 굴을 활용한 ‘굴 물회’ 등이 있다, 서해안 서산 지역에서는 굴 중에서도 돌에 붙은 석화굴로 ‘굴 물회’를 만들어 먹는다. 충청도 방식의 양념 탓에 담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째복’이라 불리는 백사장의 ‘민들조개’를 삶아내어 갖은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한 고추장 육수를 부어 물회를 낸다. ‘째복 물회’이다. 이때 잘 삶은 소면 한 덩이도 넉넉하게 넣어주기에 끼니로도 먹을 수 있다.

 

 

 

    통영 도미 물회                                                                                                                 ⓒ최원준

 

 

 

   원래 ‘물회’의 원형은 어부들의 노동식, 참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시절 갯가 마을에서 적은 양의 해산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채소로 양을 늘려 먹던 음식이기도 했다. 갯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해산물과 텃밭의 채소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고, 부뚜막의 양념으로 설렁설렁 비벼 먹었던 ‘고난의 음식’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지금은 각각의 해안지방의 음식 문회를 제대로 담은 향토 음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어부의 음식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독특한 해양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은 물회. 지방마다 음식의 이름은 같게 ‘물회’이지만, 음식에 소용되는 해물 식재료와 양념장, 조리법까지 각기 다른, 여느 바다 지역의 ‘향토음식’이 바로 물회이다. 그러하기에 참으로 소중한 음식이면서 지역에 따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최원준

 

시인이자 음식문화칼럼니스트.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소울푸드를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인문학적으로 연구, 기록, 방송, 강의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음식으로 지역의 역사문화를 소개하는 ‘음식문화해설사’ 양성과정을 동의대에 개설, 운영했다. 

현재 KNN 방송 진행과 국제신문 음식문화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으로 ‘북망’ 등 3권과 음식문화칼럼집으로 ‘음식으로 읽는 부산현대사’, ‘부산탐식프로젝트’, 

‘탐식기행, 소울푸드를 만나다’ 등과 부산학 관련 공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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