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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365일] 금정산등산코스 - 산성마을 기점. 중리-국청사 -중성 성벽-제4망루-북문 | 죽전-암문-미륵사 -고당봉 | 공해마을-파리봉

by Jigton GAL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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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해발 400m의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성마을은 행정구역이 금정구 금성동으로 죽전(竹田)과 중리(中里), 공해(公廨) 세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죽전마을은 화살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중리는 중성문(中城門)이 있었던 것에 연유한다. 그리고 공해마을은 공해란 관아(官衙)라는 뜻으로, 그곳에 좌기청(座起廳)과 군기고(軍器庫) 화약고 내동헌 별전청(別典廳) 등이 있었다.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지만 신라 때부터 화전민과 승려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옛날 어느 때인가 국(鞠)씨와 두(杜)씨 성을 가진 두 가족이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왜군에 붙들려가 한동안 마을이 텅 비었다가 기장군 철마에 살던 장사인 김해 김씨가 이주해 와 다시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정산성 안 동네라는 뜻의 금성리(후에 금성동)는 행정명칭이 1914년 부군(府郡)통합 때 새로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산성리로 <동래부지(1740년)>와 <동래부읍지(1832년)> 방리조에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1872년 제작된 지방지도에는 지금의 부산교육원 자리에 성문리(城門里)라는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풍수지리상 산성마을은 옥녀가 금반을 받쳐 든 옥녀금반(玉女金盤)형이라고 하지만 산성의 중심인 공해마을의 진산이어야 할 옥녀봉이 없다. 그래서‘옥녀의 자태는 보이지 않고 치마폭을 두른 듯한 산들로 둘러싸인’산성마을의 옥녀는‘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누워있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옥녀의 기(氣)는 봉우리에서가 아니라 생기봉 아래의 공알(宮)바위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이 바위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공해마을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계곡의 원류가 된다. 
금성동은 산성막걸리로 유명하며 술을 만드는 누룩은 이 마을의 특산물로 한때 산성 누룩의 제조가 동래·부산지방의 쌀값을 좌우했다고 한다. 이런 마을의 술과 관계 깊은 오랜 역사 때문에 435세대 1천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에 술과 관련된 음식업소가 1백여 곳이나 된다.

 

 

 

 

중리-국청사 -중성 성벽-제4망루-북문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10분

중리 → 국청사 → 도로 옆 중성 → 계곡 → 제4망루 → 북문

 

 

아침 느지막하게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로 가보면 그곳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중리에서 가톨릭농장을 거쳐 북문으로 이어지는 긴 도로를 따라 오른다. 그러나 도로를 걸어 오르는 지루함을 피해 중성성벽을 따라 제4망루를 거쳐 북문으로 갔다가 하산은 도로를 따라 산성마을로 돌아오는 것은 어떨지.


중리에서 버스를 내려‘돌집’옆 학생교육원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가다 오른쪽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국청사 (國淸寺)가 있다. 신라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절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정산성을 방어하던 호국사찰로 승병장이 거주하는 승군의 사령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승병장이 사용한‘금정산성승장인’이라는 쇠도장이 보관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청사지(國淸寺誌)>에‘국청사에는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부산진첨사 정발(鄭撥)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尹興信) 등과 함께 승장인 만홍(萬弘) 정안(定安) 성관(姓寬) 관찰(寬札)스님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좌. 국청사 일주문.  우. 산성만호불망비 

 

그러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절로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숙종 29년(1703) 중성을 쌓는 등 금정산성을 개축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 후 사세가 기울었던 국청사는 1978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에서 6~7분을 더 오르면‘솔밭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이어 산허리를 돌면 도로 오른쪽 산에 성곽이 이어진다. 중성이다. 도로 바로 위 표지판 앞을 돌아성을 따라 오른다.조금 가파르다 싶으면 곧 북쪽으로 뻗었던 성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거의 평지에 가까운 능선에 오른다. 

 

 

좌. 장대.  우. 중성 들머리. 


그러나 그것도 잠깐, 멀리 제4망루와 의상봉이 보이면서 성은 방향을 다시 오른쪽으로 바뀌면서 커다란 깃발이 서있다. 오른쪽 계단 위에 장대(將臺)가 있다. 성은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바뀐다. 
성벽 왼쪽 등산로는 임도와 연결된다. 성의 내리막 끝에 있는 계곡을 건너 앞을 막는 바위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제4망루와 이어진 중성의 위용이 드러난다. 장대에서 성을 계속 타기 싫으면 장대에 올라 동북쪽의 제4망루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서면 된다.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성벽을 따라 내려서면 곧 성을 넘는 길과 마주친다. 왼편 북쪽은 북문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남쪽으로 가면 산성마을이다. 앞의 능선에 올라서면 제4망루가 빤히 보이지만 10분 정도는 걸어야 망루가 있는 금정산 동쪽 능선길에 닿는다. 제4망루에서 원효봉을 거쳐 북문까지 가는 데는 30분 정도면 된다.

 

 

 

 

죽전-암문-미륵사 -고당봉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20분

죽전마을 → 부산 공무원교육원 안내판 → 중성 암문 → 도로 → 미륵사 → 서쪽 능선 → 고당봉

 

 

산성마을에서 고당봉에 오르려면 북문을 거치는 것이 길 찾기도 쉽고 빠르지만 숲 속을 걷는 재미가 거의 없다. 그러나 죽전마을에서 미륵사를 거쳐 고당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숲이 짙고 비교적 사람이 적어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죽전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금성동 1통 회관 앞에서 북쪽으로 난 돌담사이의 도로를 따라가면 방향이 서쪽으로 바뀌면서 금성동 교회가 보인다. 교회 뒷길을 따라 가면 금정산 허브랑 야생화농장 앞을 돌아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오른쪽에 부산학생교육원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도로 따라 계속가면 부산학생교육원으로 가는 지름길과 만난다. 

산비탈을 따라 올라 소나무숲길을 지나면 곧 중성암문과 멀리 미륵사가 보인다.
암문을 지나면서부터 굴참나무 사잇길이지만 산은 오른쪽 뿐이다. 5~6분 걸으면 도로와 마주치는데 등산로는 도로 건너편의 유씨농장 표지판 뒤로 열려 있다.

 

■죽전마을 돌담길. ▼중성 암문.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들어서서 개울을 건너 2~3분이면 왼쪽 염소농장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이어 2분 걸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개울을 두 번 건너는 등 20분정도면 제2금샘이 있는 서쪽 능선에 올라선다. 오른쪽 길을 따라 2분 정도면 개울을 건너서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북문산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미륵사와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5분 정도면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둘러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다시 6분정도면 제법 넓은 산길과 만난다. 왼쪽은 서쪽 능선까지 25분 걸린다. 오른(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3분이면 미륵사로 가는 지름길이 나온다. 잡목 숲길로 20분 정도 오르면 미륵사에 닿는다.
이 절은 원효대사가 세웠다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미륵삼부경>중의‘상생경종요(上生經宗要)’를 썼고 또 호리병 5개로 왜구의 배 5만척을 구했다고 전한다. 당시 왜의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사가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구멍이 지금도 독성각 옆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절 한가운데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를 좌선바위라고 부른다. 이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모자이크한 듯이 어울려 있지만 해가 지고 난 뒤 바위사이의 금이 보이지 않게 되면 바위 전체에 스님이 좌선하는 형상이 분명히 드러나 붙여진 이름이다. 좌선바위 뒤편의 바위가 미륵불과 닮았다고 하여 미륵봉이라고 한다. 미륵사란 이름도 여기에 유래한다. 미륵사는 염화전(拈華殿)을 비롯하여 미륵전 오백나한전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종각 요사들로 되어 있다.
미륵사에서 북문까지는 동쪽으로 700m 거리이고 고당봉으로 가려면 오백나한전과 종각 사이를 지나 해우소 옆길을 따라 300m쯤 가서 서쪽 능선에 이르면 고당봉까지는 1.2km다.

 

 

 

 

공해마을-파리봉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50분

공해마을 → 금산사 입구 → 계곡 → 갈림길 → 능선 → 파리봉

 

 

등산을 시작하기 보다는 상계봉이나 파리봉에 올랐다가 산성마을에 들르고 싶은 생각이 날 때 하산길로 이용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한 코스다. 그러나 온천장 도시철도역이나 구포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로 왔다가 빤히 쳐다보이는 파리봉에 이끌려 산을 오르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빠른 코스다.
구포시장에서 출발하는 1번 마을버스라면 종점에서, 그리고 온천장 홈플러스 앞에서 203번 좌석버스를 탔다면 공해마을에서 내려 남쪽으로 뻗은 공해2길로 들어선다. 1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파리봉의 바위가 보인다. 다시 3~4분이면 마을 끝집을 지나 은행나무 앞에 선다. 2분쯤 더 가 왼쪽의 남양농원과 오른쪽 금산사 간판사이의 포장도로를 따라 50m정도 가면 30m 전방에 바라크형 집이 보이고 오른쪽에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
오른쪽 길을 따라 2분 정도면 다시 산길이 갈라진다. 넓은 길을 그대로 30분 정도 오른다면 수박샘 부근의 도로와 만나고 남문까지는 불과 3분의 거리다. 

 

 

들머리(공해마을 금성암).

오던 넓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오른쪽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50m 정도 오르면 계곡 쪽으로 검은 비닐 파이프가 깔려 있는 희미한 길이 갈라진다.
오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조금 전버렸던 넓은 길과 만난다. 다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5~6m 들어가 계곡을 건너면 오래된 등산로가 기다린다. 
왼편(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5분 정도면 주계곡과 멀어지면서 등산로가 희미 
해지지만 등산로 왼편의 물길을 자세히 보면 원래의 산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걷기 편한 잡목 숲속을 10여 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주변을 주의 깊게 보면 리본 2개가 붙어 있다. 

 

 

왼쪽의 산길을 그대로 오르면 제1망루와 파리봉을 잇는 능선에 올라선다. 파리봉 보다는 상계봉이 목표라면 이 길을 택하는 것이 제1망루와 가깝고 경사도 완만해서 좋다.

공해마을서 본 파리봉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금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번에도 오른쪽길을 따라 오른다. 3~4분이면 등산로가 개울처럼 패어 있지만 그대로 10여m 오르면 또 갈림길이 나오지만 왼쪽 길은 무시한다. 오를수록 등산로가 험하고 가팔라 지지만 10여 분이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능선에서 북쪽의 파리봉은 1분의 거리이고 남쪽의 제1망루까지는 15분 정도의 거리다.

 

 

 

* 저작권은 부산산악포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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