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실제 역사!
1979년 이 땅 대한민국의 신군부의 쿠데타 12.12가 있었습니다..
신군부라고 이야기하는 건 박정희의 쿠테타의 군부와 비교하기
편하게 새로운 군부라고 표현을 붙인거죠..
1979년에 YH 무역 회사 사건으로 인해서 김경숙이란 여공이 신민당 당사농성 중에 죽게 되고 당시 신민당의
총재였던 김영삼이 외신 기자들 불러 모아서 박정희를 비판하는 기자 회견을 했고
박정희 입장에서는 일개 국회의원이 감히 국가원수를 모독 한다라고 하면서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재명하고 그러다보니까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났고
부마항쟁이 한창일 때 박정희가 10.26 사건으로 인해서 죽게 되고
그래서 제 드디어 이 땅이 나라의 민주화 시대가 오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이상한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고 그 빛은 사람 머리에서 비춰지는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빡빡이의 등장! 바로 12.12 이죠..
이래저래 전두환이 박정희에게 그렇게 총애를 받았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박정희가 시해 당하던 1979년에 전두환는 보안사령관이었는데
정보망을 관장하는 기구가 당연히 중앙정보부인데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체포돼 있는 상태였고, 대통령도 죽었고, 그다음 무소불위의 권력을 노렸던 경호실장 차지철도 죽어버렸죠.
박정희 정부에서 항상 여러분 넘버 2는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그 유명한 김종필 뭐 김욱, 이후락 뭐 김재규 이런 중앙정보부장 이름들을 들어보셨겠죠.
박정희 정부 때 총리는 거의 뭐... 그죠?
그런데 당시 총리가 최규하였습니다.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죠.
12월6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최규하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됩니다.
박정희가 72년 7차 개헌으로 유신헌법 만들고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 회의에서 2,500명 정도의 선거인단이 모여서 선출하는 건데
그 유신 체제에서 최규하가 대통령으로 당성이 됐죠.
최규화 체제에서 이제 안정을 찾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에 대통령이 총을 맞고 서거 했으니까 국가비상사태 아닙니까
계엄이 선포되 있는 상태에서 육군 참모 총장이었던 정승화가 계엄 사령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규하도 그랬겠지만 정승화 계엄사령관 역시
당시 보안 사령관이 10.26 관련 모든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전두환을 견제할 수밖에 없었던게
전두환이 육사 11기 생도로 출발해서 엄청난 군부의 사조직 하나회의 리더라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 군부의 사조직 하나회의 중심의 군인들이 다시 한번 쿠테타를 일으킨다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최규하나 정승화나 아마 끔찍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승화가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대로 전출을 시켜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모든 정보망을 다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던 전두환에게 그 소리가 들리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계엄상태의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 총장을
보안사령관 별 두 개짜리 별네 개짜리 체포해 버리는 사건!
이게 바로 12.12 사태입니다.
1979년이면 이제 대한민국 수립된게 30년이었다.
물론 일제 강정기 친일파였고 민족 반역자 있고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 됐던 사람들중에
일부는 정말 호화롭게 살다가 한평생 잘 살다가 죽어버린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그때라도 역사의 전기를 바로 세울 수 있었는데
구의 기회를 516 박정희가 날려버리고,
박정희 서거로 새롭게 찾아온 민주화의 열망을
12.12이 전두환이 박살내면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그 기회가
박정희와 전두환 두 명의 군인에 의해 날아갔다는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12.12 사태 그 주역들 전두환, 노태우는 대통령까지 했고요.
그다음 뭐 박희도, 정호용은 육군 참모 총장까지 하고요.
그다음 아까 이야기했던 그 어마어마한 세력들
장세동 허평 허삼수 박희도 유학성 황영시 전부 다 국회의원, 장관,
뭐 공사 사장 해먹을 수 있는 걸 다 해먹고
이들 중에 지금 상당부분 거의 대부분 생존에 있고
거의 막둥이가 나이가 80입니다.
진짜 정의로움과 인간의 수명 관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하고 싶은 12월 1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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