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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한국사] 6.25영웅이자 친일파 백선엽, 채명신 장군의 증언, 간도특설대 만행, 친일인명사전 | 보수는 신격화하고 진보는 고개 젓는 故백선엽 장군의 '공과 과'

by Jigton GAL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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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를 내다 본 70만뷰 영상(이보다 더 잘 찍을 순 없다)

 

 

 

백선엽장군은 친일파 맞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보수란 무엇인가?
친일, 친재벌, 반민족주의가 보수인가?

독립군을 토벌하는 
간도특설대 복무자를 존경할 수 있는가?



 

 

남해 이순신해 병기 서명운동 (xn--eq4b2nl7ix9r.kr)

 

남해 이순신해 병기 서명운동

남해를 ‘이순신해’로 병행표기하는 범국민 서명운동

xn--eq4b2nl7ix9r.kr

 

 

박민식 "백선엽, 공부할수록 친일파 아냐...장관직 건다” - YouTube

 

백선엽, 친일파 아니다. 장관직 건다

 

 

보수는 신격화하고 진보는 고개 젓는 故백선엽 장군의 '공과 과'


■최욱: 지난 7월 10일 향년 100세로 백선엽 장군이 별세하면서 현충원 안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교수님 오늘 이제 백선엽 장군의 공과 과에 대해서 살펴볼 텐데 먼저 백 장군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용환: 한편에서는 반민족 행위자다. 조금 많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친일파라고 공격을 받고 있고요. 한편에서는 아니 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이 지켜질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 현재 갈려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판단의 몫은 각자 시민들께서 얘기를 하시겠지만 판단을 하시겠지만 저는 역사적 팩트 위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언종: 먼저 백선엽 장군이 잘한 것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용환: 제가 회고록에 나온 말 하나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고록 인용) 굉장히 좀 멋있는 멘트로 알려진 말이기는 한데 이건 뭐냐 하면 낙동강 전선이라고 굉장히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최욱: 한국전쟁 당시에. 
■심용환: 그렇죠. 그래서 결국은 낙동강 전선을 지켜야 하는데 그당시에 가장 중요했던 게 뭐냐 하면 대구 일대를 방어해야 하는데 대구 일대 중에서도 다부동이라는 지역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를 뚫으면 쉽게 말하면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이기게 되는 거고 막으면 미군이 올 때까지 뭔가 국군을 수습할 수 있는 기간이 되는데 이걸 뚫기 위해서 북한군 3개 여단이, 3개 사단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게 되고 이때 이제 백선엽 장군이 이끌던 1사단이 아주 치열하게 막아 싸워서 결국은 막아냈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방금 드렸던 말씀처럼 만약에 내가 후퇴하면 나를 죽여라.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아주 용장의 모습을 보여줬고요. 이후에도 미군이 들어온 다음에 그 미군과 함께 북진을 한다든지 하는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었던 장군이기도 합니다. 


■최욱: 굉장히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야말로 정말 훌륭한 명장처럼 들리는데. 그러면 당연히 현충원에 안장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목소리가 타당하게 느껴지네요. 


■심용환: 군사적으로 봤었을 때 약간 비판의 의견이 있습니다. 비판의 의견은 뭐냐 하면 너무 한국전쟁 영웅을 백선엽이라는 한 명이 독점하고 있지 않냐.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83년에 우리나라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6.25 전쟁의 4대 영웅을 발표하는데 놀랍게도 4대 영웅 중에 백선엽 장군은 없습니다. 워낙 큰 전투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중요했다는 건데 누구냐 하면 일단 미국은 그 유명한 맥 아더 장군과 워커 장군 등이 유명하고요. 아무래도 미국의 역할이 컸으니까요. 한국군은 우리가 잘 모르는데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이 뽑혔습니다. 백선엽 장군보다는 인지도가 한참 떨어지는데. 


■오언종: 처음 들어보는데. 


■심용환: 이게 좀 억울한 측면들이 있는데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안 그럴 건데 김홍일 장군 같은 경우는 미군이 오기 전까지 한강 방어선이라든지 물론 낙동강까지 밀리기는 했지만 그 과정을 이렇게 군을 수습하면서 잘 이렇게 전선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 그러니까 한강 방어선을 일주일간 지켜낸 분이 김홍일 장군입니다. 그리고 김종오 대령은 이제 뭐 이런 얘기 있잖아요. 북한군이 서울에서 왜 3일간 가만히 있었냐. 이런 얘기가 되게 유명한 일화인데 실제로 춘천과 홍천, 강원도 일대에서 김종오 대령이 이끌던 부대가 북한군의 남하를 계속 막아내면서 사실은 북한군의 전체 작전 계획이 흐트러졌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 미국의 유수한 역사학자들도 이 작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이렇다고 해서 백 장군의 공이 없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건 너무 한 명한테 과장됐고 마치 혼자 무슨 나폴레옹처럼 혼자 이 전쟁을 다 이끌었다고 하는 건 그건 조금 분명히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욱: 문제가 되는 것은 또 과 부분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어떤 잘못이 있었을까요? 


■심용환: 이것도 제가 백선엽 장군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고록 인용) 이게 이제 백선엽 장군의 회고입니다. 그런데 국내 회고록에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잘 안 나오고 일본어판에 나왔던 내용에서 자기가 소위 말하는 간도특설대에서 친일 군인으로 활동했었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했던 부분입니다. 


■최욱: 그러니까 이거 내용이 쭉 나왔는데 이게 결국은 독립군을 때려잡았다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 간도특설대로 복무를 했고 독립군을 이렇게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한 건데 그런데 일본군 출신 군인들이 우리 역사에 참 많이 있었잖아요. 뭐 박정희 대통령도 일본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심용환: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실 간도특설대 복무했다는 게 더 좀 어떻게 보면 대중의 입장에서는 조금 자극적인 주제죠. 왜냐하면 실제로 만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했다. 이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라서. 


■심용환: 간도특설대는 아주 쉽게 말하면 일단 그당시에는 30년대 후반에는 중일전쟁 기간인데 만주도 만주국이라고 해서 일본이 통치하는 괴뢰 국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만주군관학교라는 군사 양성소가 있었는데 거기에 백선엽, 박정희, 정일권 등을 비롯해서 많은 조선의 청년들이 가서 훈련을 받고 부대 배속을 받게 되는데 말 그대로 간도특설대는 간도 일대에서, 만주 일대에서 활약을 하면서 어떤 조선인 독립운동과 항일무장부대,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어떤 항일 부대, 이런 부대를 상대하는 역할을 했었던 부대였었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한국인이 아무리 식민지 조선인이지만 일본 군인이 돼서 어떤 일본과 싸우는 데 있어서 일본 편을 들었던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 자체가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된 행동이라 할 수 있겠죠. 


■최욱: 그러니까 간도특설대의 설립 목적 자체가 독립군을 잡겠다는 거 아닙니까? 


■심용환: 맞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최욱: 그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그냥 팩트잖아요. 


■심용환: 그래서 나중에 이제 2000년대 들어와서 친일파의 어떤 역사적 과오를 정리하고자 인명사전 작업 같은 것들을 쭉 진행할 때 당연히 간도특설대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친일파로 분류가 됐다는 것도 우리가 기억할 필요도 있고요. 
■오언종: 단순히 일본군에 복무한 게 아니라 독립군을 토벌하는 간도특설대에 있었다. 그렇다면 굉장한 친일 반민족 행위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분이 현충원에 안장된다는 게 좀 어불성설일 것 같기도 한데. 어떻습니까? 


■심용환: 하도 간도특설대 활동 갖고 말이 많으니까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간도특설대로 활동하던 40년대, 43년대 이때는 간도나 만주 일대에는 항일무장부대가 없었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오언종: 팩트가 아닙니까? 
■심용환: 43년, 44년 이때면 전쟁 막바지이기 때문에 아주 치열한 항일무장부대가 많았고요. 중국 공산당 부대가 제일 많았지만 중국 공산당 부대가 아닌 민족주의자들도 많았고 더 중요한 건 간도특설대는 북중국 일대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여기서 싸우지만 저쪽 충칭 가서 임시정부를 무너뜨려라고 사실 명령을 하면 거기에 가서 임시정부랑 싸울 수밖에 없는 부대입니다. 


■오언종: 간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명령을 받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심용환: 그건 당연한 거죠. 부대이니까. 그래서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사실 최근에 소위 말하는 그런 어떤 백선엽 장군에 대한 변호 논리는 적어도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정확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욱: 그러면 한국전쟁 그 이후에 백선엽 장군의 삶은 어떠했는지 잘 안 알려진 것 같아요. 


■심용환: 사실 이게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걸 알면 조금 더 충격적일 수 있는데 첫째는 사실은 그나마 조금 유명한 건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여수 순천 10.19 사건 당시에 박정희 군대 내에서 숙군 작업 당시에 남로당과 연루가 되어 있었고 그때 같은 만주군 인맥이잖아요. 그래서 백선엽의 적극적인 구명 의지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그때 박정희죠. 박정희가 살아남게 되고 그 인연이 어찌 됐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60년대 후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이나 유신으로 가는 그때 쉽게 말하면 픽업을 해서 교통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하고 또 더 뒤로 가면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그런 어떤 국가 원로로서 역할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실은 군인으로서 은퇴를 한 다음에도 한국의 주류의 입장에서 많은 부귀를 누렸고 이게 이제 많은 보도에 의해서 많이 보도가 됐지만 그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투기를 성공하지 않았냐. 특히 강남 일대 그런 빌딩이나 이런 것들이 자녀 소유로 있는데 그게 결국은 이때 어떤 그런 기득권을 악용하거나 활용해서 얻은 거 아니냐하는 비판들이 사실은 많고 또 근거 있는 비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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