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길라잡이] 144 - 의대에 보내고 싶다면 | 제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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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한 잘못보다 알고도 한 잘못이 더 무겁다.
몰라서 지은 죄보다 알고 한 죄가 더 크다. 뭐 그런 말 저희가 많이 하죠.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그러잖아요.
『나선비구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밀린다왕이 나선 스님한테 묻죠.
“지혜로운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어리석은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큰 재앙을 당하게 됩니까?”
그러니까 나선 스님이 뭐라 그래요?
“어리석은 사람이 악행을 저지를 때 재앙이 더 큽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죠.
그러니까 밀린다왕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반문을 하죠. 밀린다왕의 주장은 뭐예요?
“내가 나라를 다스릴 때 보면 높은 벼슬에 있는 자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무겁게 다스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백성들, 어리석은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가볍게 다스립니다. 이로써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 죄를 지어서 받는 재앙이 더 크고, 어리석은 사람이 죄를 지어서 받는 재앙이 더 작은 셈 아닙니까?”
하고 묻는 거죠.
그러니까 나선 스님이 뭐라 그래요?
“자, 무지하게 뜨겁게 달궈진 쇠덩어리가 땅에 떨어져 있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땅이 이렇게 있고 여기에 쇠덩어리 같은 게 하나 떨어져 있는데, 이게 무지하게 뜨겁게 달궈져 있는 그런 쇠덩어리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혜로운 사람, 하나는 어리석은 사람이겠죠. 어떤 사람은 이것이 무지하게 뜨겁게 달궈져 있다는 걸 알고, 또 다른 사람은 그걸 모른다고 할 때, 이 두 사람이 동시에 이것을 움켜잡았다 하면 어느 쪽이 더 크게 손을 데겠습니까?
하고 나선 스님이 밀린다왕한테 다시 물어요.
그러니까 밀린다왕이,
“그거야 뜨겁게 달궈진 쇠덩어리라는 걸 모르는 쪽이 더 크게 손을 데겠죠.”
그러죠.
그러니까 나선 스님이 뭐라 그래요?
“어리석은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기 때문에 재앙이 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참회하기 때문에 재앙이 적게 됩니다.”
그러죠.
그러니까 이제 밀린다왕이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거죠.
이 대목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될 수는 있는데, 어쨌든 핵심은 악행 그 자체의 무게라기보다는 악행 이후의 방향을 말하는 거라고 봐야 좋겠죠.
우리가 운전하시는 분들 보면 전부 내비게이션 쓰실 텐데, 차 두 대가 길을 가다가 똑같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봐요.
어떤 차는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하고 알려주죠.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금방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돌아서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오늘 이 대목에서 나선 스님이 말하는 재앙이라는 것은 첫 번째 실수, 즉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가 계속 반복되고 이어지는 것, 그게 진짜 재앙이라는 거죠.
그래서 공자도 『논어』에 보면 그런 말 하잖아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한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죠.
똑같이 부상을 입었더라도 열심히 소독하고 밴드 붙이고 관리하는 사람과 그냥 방치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다르다는 거죠. 하다못해 나중에 흉터가 진 걸 봐도 결과가 다르다는 거죠.
상처의 크기가 아니라 상처를 대하는 태도가 재앙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
그게 오늘 나선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아닐까 싶어요.
종교적으로 보면 불교라는 것도 참회나 성찰 같은 것을 강조하잖아요. 아무튼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대목입니다.
『나선비구경』 재미있다, 그런 분들이 계셔서 그냥 한번 드려본 말씀이에요.
저희가 계속 『장자』 「산목편」을 보면 되죠.
오늘은 북궁사(北宮奢)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분은 성이 북궁이고 이름이 사죠. 위나라의 대부였다고 하는데, 궁궐 북쪽에 살아서 성이 북궁이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령공 때 사람인데, 위령공이 북궁사한테 큰 종을 만들라고 시켰던 모양이에요. 우리 에밀레종 같은 거, 그런 어마어마한 종을 한번 만들어봐라.
에밀레종은 설계부터 주조하고 걸어서 치기까지 만드는 데 한 10몇 년, 20년 걸렸다 그러잖아요. 원래 이름은 성덕대왕신종이죠.
경덕왕 때 경덕왕이 자기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는데, 만들다가 경덕왕이 죽고 사업이 중단됐다가 결국 그 아들 혜공왕 때 완성됐다고 그래요.
아무튼 거의 2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해요. 뭐 17년, 18년.
그런데 북궁사는 에밀레종 같은 그런 어마어마한 종을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버렸다는 거죠.
그러니까 동료 신하들이 막 물어보잖아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마술을 부린 겁니까? 어떻게 저런 어마어마한 종을 3개월 만에 만들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북궁사가 뭐라 그래요?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동안 감히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죠.
종 만드는 것, 그 한 가지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감히 다른 마음을 두지 않았다. 뭐 그런 건데요.
오늘 이 대목에서 동료 신하들이 달라붙어서 물어보는 것은 “어떻게 3개월 만에 저 어마어마한 종을 만들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인데, 북궁사가 말하는 핵심은 그게 아니죠.
북궁사가 하는 말의 방점은 ‘3개월 만에 종을 완성시켰다’는 기간에 찍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일이 그렇게 막힘없이 진행될 수 있었는가, 그 원리에 찍혀 있는 거죠.
이 뒤에도 북궁사의 말이 계속 이어지긴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건 철학 전공자들이나 좀 눈여겨봐야 할 진술들이고, 사실 저희는
“한결같이 한 가지 일에 전념했을 뿐, 감히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이 한 문장만 소화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뒤에 나오는 문장들은 너무 사변적이고 추상적이에요. 철학과에서 ‘장자 철학 특강’ 같은 과목 하나 개설해 놓고 다 같이 머리 싸매고 한 서너 시간 정도 세미나하기 딱 좋은 그런 문장들이에요.
한 가지 일에 전념했을 뿐 함부로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그런 걸 한번 생각해보죠. 이걸 자꾸 현대적인 맥락에서 봐야 돼요.
스타트업 같은 걸 한번 보죠.
청년들 스타트업 지원, 이런 것 정부에서 많이 해주고 요새 그러는데, 가만히 보면 국고에 노는 돈이 의외로 많아요. 그걸 잘 찾아서 활용하는 것도 재능이죠.
아무튼 청년들이 모여서 스타트업을 하는데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는데도 어떤 팀은 회의만 하다가 2년이 지나가고, 어떤 팀은 3개월 만에 결과를 내놓는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느냐는 거죠.
그들이 쓰는 기술은 사실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이쪽 팀은 ChatGPT 돌리고 다른 팀은 주판 튀기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오늘 북궁사가 하는 말의 요지는 기술의 차이가 결과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팀원 모두가, 온 조직이 같은 지향을 품고 한 방향을 바라보는가 그렇지 못한가가 결국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 아닐까요?
교수들 회의하는 거 들어가 보신 적 있으세요?
아마 거의 없으시겠죠. 교수님들 혹시 계시나? 우리 채널에. 말을 좀 아껴야 되는데, 제가 진짜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은데, 고구마 100개가 아니라 한 2,000개는 꽉 얹혀 있는 그런 느낌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 그런 분이 있으면 교수회의 참관을 한번 신청해보시길 바라요.
뭐 참관 신청하는 사람도 없고 한다고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선택장애도 그런 선택장애가 없죠.
“뭘 할까?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이걸 가지고 한 이틀 고민하고 앉아 있는 약간 그런 느낌이랄까요?
제가 하도 기가 차서 연구를 좀 해봤어요.
“이분들이 도대체 왜 그럴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리고 내린 결론이 뭐였냐면,
교수라는 사람들은 백이면 아흔아홉이 실패를 두려워한다.
제가 체면상 한 명 빼드린 거예요.
제가 그걸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계속 물 앞에서,
“수영모는 똑바로 썼는지, 혹시 풍덩하는 순간 벗겨지는 거 아니야? 잠깐만, 잠깐만. 여기 수영장 규정이 어떻게 돼? 수영모가 필수인 거야? 색깔 정해진 건 없고? 비키니도 되나? 그래도 여기가 학교고 우리가 교수들인데 비키니는 좀 그렇지 않아? 태닝은? 태닝은 되는 거야?”
야외 수영장 입구에서 여름 내내 그러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뛰어들어야 일이 되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도 안 뛰어들죠. 뛰어드는 순간 왕따가 되는 거니까.
이제 학장한테 불려가죠.
“최 교수, 왜 그렇게 성급하게 뛰어들었습니까? 이 사안에 대해서 총장님하고 얘기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럼 그날부로 최 교수는 부교수도 못 달고 만년 조교수 하다 끝나는 거예요.
이거 제가 우스갯소리로 드리는 농담이 아니고요. 진짜예요. 현실입니다. 오히려 제가 좀 순화를 해드린 거예요.
그만큼 교수자들이 실패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몰라요. 거의 공포스러워하죠.
교수 열 명을 모아놓으면 전부 박사들 아니에요. 같은 공간에 앉아 있어도 각자가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이 또 깊어. 마음이 하나로 합쳐질래야 합쳐질 수가 없죠.
그래서 대학을 혁신하는 것보다 대학을 새로 하나 짓는 게 더 빠르다는 말도 하잖아요.
오케스트라 같은 것도 한번 봐보세요. TV에서도 오케스트라 공연하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왜 지휘자를 그렇게 쳐주는 거예요? 컨덕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무젓가락 같은 거 하나 쥐여주면 앞에 나가서 이리저리 휘두르기만 하면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죠.
지휘자한테는 ‘내 파트’라는 게 없어요. 몇 시간짜리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지휘자가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뜨는 거잖아요.
지휘자가 바뀐다고 악기들 성능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제각기 연주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박자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게 진짜 훌륭한 지휘자의 힘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북궁사도 그런 힘을 말하는 거예요.
차가 100대 밀려 있어도 서로 신호가 잘 맞으면 금방 빠져나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열 대만 있어도 서로 먼저 가겠다고 끼어들고 그러면 정체가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거죠.
오늘 북궁사는 3개월 만에 종을 만든 비결로 뭘 제시하는 거예요?
백성들을 억지로 몰아붙이고 만리장성 쌓듯이 밀어붙인 게 아니라, 다만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
이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인 거예요.
그렇게 무위자연할 수 있도록 백성들을 만들어줬을 뿐이다. 내가 한 거라고는 그게 전부다.
강의도 마찬가지라니까요.
말 잘하고 몇 시간씩 사람들을 잘 웃기고 그러면 그게 좋은 강사인 줄 아는데, 강의라는 게 그런 게 아니죠.
진짜 명강사는 청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왜 그런 거죠?
일단 청중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기만 하면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만 명이 앉아 있어도 귀는 하나가 되기 때문이에요.
마치 한 사람을 앉혀놓고 일대일로 대담하는 것처럼 그렇게 강의가 흘러가는 거잖아요.
참 저도 이런 강의를 좀 해야 되는데 제가 부족해서 늘 죄송합니다.
오늘 후대 도가들의 관심사는 3개월이라는 공사 기간이 아니죠.
“에밀레종이 20년 걸린 걸 북궁사는 3개월 만에 해치웠다.”
이런 건 철학의 관심사가 아니에요.
3개월 만에 완성된 종이라는 것은 막힘이 없는 상태, 즉 무위자연한 상태를 상징하는 일종의 철학적 장치일 뿐이잖아요.
오늘 후대 도가들이 하고 싶은 말은 하나죠.
억지로 밀어붙여서 죽지 못해 하도록 만들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거예요.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진다는 거죠.
교수회의를 백날 천날 해도 왜 진척이 없는 거예요?
안건 하나를 갖고 2년을 그러고 있는데, 그 회의에 가서 앉아 있고 싶은 교수자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죠.
그냥 내 연구실에서, 나만의 제국에서 내 제자들 데리고 있고 싶지. 회의의 필요성을 느끼는 교수자가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다들 핑계 대고 빠질 궁리만 하는 거잖아요.
억지로 하도록 하면 20년이 뭡니까? 100년도 더 걸릴 거예요.
그런데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동학에서 그런 말도 하잖아요.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만 있다면 일이라는 것은 저절로 굴러가는 거다.
그런 얘기죠.
저희가 계속 지금 『장자』 길라잡이를 하면서 비슷한 맥락을 봐왔지만, 일을 성사시키는 건 기술만이 아니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이놈은 우주로 가려고 하고 저놈은 아래로 파고 들어가자고 하면 그게 일이 똑바로 되겠느냐, 그 소리를 하는 거예요.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그때 비로소 일은 스스로 진척되어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 저절로.
자녀 교육도 다 마찬가지잖아요.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문짝까지 다 뜯어내고 엄마가 그 앞에서 지키고 선다고 해서 애가 의대 가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애가 병이 나죠.
그러니까 자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과연 얼마나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
부모들이 정말로 돌아봐야 할 것은 그게 아닐까 싶어요.
『장자 길라잡이』를 함께 해주시는 여러 선생님, 그리고 제 자신도 하나 된 마음을 지향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더우니까 짧게 짧게 하자고요.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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